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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도모유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리뷰 - 다 읽었습니다.

Sirmail 2026. 1. 15. 15:54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을 읽으면

제 안에 설정되어 있는 상식의 경계를

쿡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는

먼저 읽었던 ⌜엘리펀트 헤드⌟ 에 비해

좀 더 밝고, 가볍고,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한 비현실감이 있었습니다.

 

좋았던 요소들을 정리해둡니다.

 

*여기부터는 특수 설정을 예상할 수 있는 스포가 있으니,

모르고 싶은 분들은 읽지 마세요.

 

 

-

 

1

다중 추리

 

같은 사건과 증거를 공유하는 관계자들 - 용의자들이

각자의 추리를 펼치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설명은 정말 그럴듯해서

'책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고

다른 설명은 얼토당토 않아서

'이게 진실이면, 실망인데'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설마 하면서도 다중 추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증거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에서는

다중 추리가 좀 더 복잡하게 제시됩니다.

각자의 추리를 설명하고 반박하는 것이

실시간으로 일어나지 않고

'어떤 이유' 로, 하나의 추리가

다음 챕터의 어떤 사건으로 반박되면서

새로운 추리가 제시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런 식으로 긴장감을 차근차근 고조시키면서

끝까지 호흡을 놓지 않게 해 주고,

비로소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을

더욱 선명히 느끼도록 해주었습니다.

 

 

2

특수 설정

 

어떤 특수 설정 소설은 지루하게 느껴지는데,

이야기 초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입니다.

필수적인 과정이겠지만

몰입하기 어려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의

특수 설정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설정이 자극적이고, 무겁지 않고, '익숙한' 데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경험' 하는 와중에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이유입니다.

 

발단과 전개 부분에서 제시된 설정을

절정으로 향하는 구간을 지나며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어느 순간 '그 세계의 규칙' 으로 인정하도록 합니다.

 

독자들이 세계관을 머리에 입력한 후

진행되는 이야기를 끼워맞추는 것과는 달리

마치 '경험'하는 것처럼 패턴을 이해하고

특수 설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3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에는

온갖 잔인한 묘사가 가득합니다.

 

곰팡이, 토사물, 피 냄새,

머리가 쪼개지고, 신체가 녹아내리고,

하반신이 뭉개지고, 내장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쾌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고통' 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좀비 영화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좀비 영화를 볼 때는

그 장르적 요소들을 인정하고

작품에 대한 거리를 설정합니다.

 

특히 폭력성의 측면에서

좀비들이 산탄총에 머리가 날아가고

불도저로 좀비 무리를 밀어버리고

좀비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도

관객은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묘사되지 않으므로

공감할 기회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거리감이 형성되면

폭력성에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즐기게 됩니다.

'그런 게 좀비 영화니까'요.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의 주요 등장인물들도

어떤 이유로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에 주목할 필요 없이

폭력성이 주는 자극만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라도

인간이 당하는 폭력에는

절대로 무감각할 수 없겠지요.

 

-

 

⌜엘리펀트 헤드⌟ 가

엄청나게 맛있지만

몸에 해로운 느낌이 진한

불량식품 같았다면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의 맛은

영화 <좀비랜드> 같았습니다.

질투와 폭력과 살인이

음습하게 가라앉아있지 않고

이리저리 신나게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